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용한 기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번쯤 필요한 ‘감정 정리의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누구에게 털어놓기 애매한 마음,
언제부턴가 내 감정이 둔해진 기분,
그리고
별일도 없는데 눈물이 맺히는 요즘.
그런 감정들을
정리하려 떠난 건 아니었지만,
결국 돌아보면 그걸 흘리기 위해 떠났던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 이유 없는 무거움
그냥 ‘어디든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날 아침,
전날 늦게 자서 피곤했는데도
눈이 일찍 떠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겠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속이 꽉 막히고
내가 내 삶에 타이밍을 놓친 느낌.
누구 탓도 아닌데 그냥 괜히 억울한 감정.
핸드폰을 열고 구글지도에 손가락을 대고
스크롤을 몇 번 하다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습니다.
경남 하동 – 평사리 들판.
수학여행 때 버스로 스쳐 지나가며
‘예쁘다’고 생각했던 곳.
그게 전부였어요.
이번엔, 그냥 내 속도로, 내 감정으로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목적 없는 도착
하동 악양면 평사리 논길로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
4시간 반 동안 말도 안 하고 음악도 안 들었습니다.
창밖을 보며 그냥 멍하게.
그게 제일 편했어요.
하동터미널에 도착하니 해가 낮게 걸려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평사리 들판 쪽으로 갔습니다.
“최참판댁 근처요.”
기사님이 그러더군요.
“요즘은 거기 사람 없어요. 벚꽃 끝났으니까.”
저는 속으로 ‘딱 좋아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이, 지금의 나에겐 필요했으니까요.
황금 들판에 혼자,
말도 없이 마음을 꺼내게 되는 풍경
내린 곳은 최참판댁 바로 뒤 논길 입구.
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논에는 물이 들어와 있었고,
노을빛이 수면 위를 타고 넘어갔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예쁜 풍경 때문이 아니었어요.
너무 조용하고,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나만 있는’ 순간이라
그동안 참아온 감정들이 갑자기 몸을 밀고 나오는 느낌.
저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논두렁 옆에 쪼그려 앉았어요.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20분 넘게 있었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
애써 덮어두었던 감정들,
그 자리에 있는 ‘고요’가 다 꺼내줬습니다.
슬픈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닌 ‘그냥 눈물’
처음엔 바람이 너무 부드러워서,
그 바람에 울컥했어요.
다음엔 논물에 반사되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그 따뜻함에 또 울컥했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고,
누구도 날 보지 않는데
내가 그 풍경 속에 있다는 사실에
조용히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건 슬퍼서 운 것도,
기뻐서 운 것도 아니에요.
그저 내 안에 쌓여 있던 말들이
바람과 함께, 햇살과 함께, 조용히 흘러나온 거예요.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그 눈물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설명해야 하고, 미안해야 하니까요.
혼자니까 가능했던 눈물.
그 눈물은 정리도 해설도 필요 없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었습니다.
하동 평사리,
그곳이 준 위로
하동의 평사리는
딱히 스펙터클한 관광지는 아닙니다.
들판 하나, 논 하나, 오래된 고택 몇 개,
그리고 조용한 시간뿐이죠.
하지만 저는 그날
그 들판이 준 고요와 시선 없음의 위로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나를 온전히 꺼내볼 수 있었어요.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지,
얼마나 말 없이 삼키고 있었는지,
‘괜찮아야 하니까’라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숨을 참아왔는지를요.
여행 정보 (실용 버전)
📍 위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일대
🚌 가는 법:
- 서울 남부터미널 → 하동 (직행 고속버스 약 4시간 20분)
- 하동 시외버스터미널 → 악양면 방향 택시 or 농어촌버스 이용 (약 30분)
- 택시비 약 12,000~13,000원
⏰ 추천 시간대:
- 오후 4시~6시 사이 / 논물에 햇살 비치는 황금빛 시간
- 새벽 시간대도 안개+들판 조합으로 추천
🎒 필수 준비물:
- 따뜻한 옷 (들판 바람은 생각보다 쌀쌀함)
- 물, 간식, 간이 방석
- 손수건 (있으면 좋아요)
- 핸드폰 OFF 추천 – 사진보다 기억이 더 남습니다
돌아오는 길,
무거운 게 아니라 가벼워진 마음
하동 읍내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 후
다음날 아침,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가벼워졌다는 표현이 딱 맞았어요.
문제는 그대로였고, 삶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그걸 쥐고 있는 감정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그 날 흘린 눈물,
그 고요한 공간이
제가 들고 있던 무언가를 조금 내려놓게 해줬으니까요.
“혼자 여행을 가면 사람들이 왜 우는지 알 것 같다.”
그 문장이 왜 그렇게 자주 들리는지,
이제는 확실히 이해합니다.
혼자라는 건
감정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고,
고요하다는 건
내 안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 감정들이 울음으로, 혹은 미소로 흘러나온다면
그건 아마
그 여행이 당신에게 꼭 필요했던 순간이었다는 증거일 거예요.